Koo's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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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에서 시작되어... 건국의 기초를 놓기에 이른 선교비사
  
첨부화일1 :
공주 영명동산에 잠든 윌리암선교사’.jpg (118096 Bytes)



며칠 전에, 통영 시청의 직원으로 있는 김대민 집사(56세, 서울 외대CCC)라는 분이,
한국 공주에서 시작되어 건국의 기초를 놓기에 이른 선교비사!!!를 보내준 적이 있다.
‘공주’라는 말을 듣고 오랜 친구 박명선 간사님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 내용을 여러 선교사들과 양촌 치유센터 김종주 장로님과 나눴다.
그에게서 아래와 같은 답신, 요청이 왔다. 
 
“나도 그 글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했는데요! 모두 큰 감명을 받고 머리를 숙이네요.
이런 선교비화!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이런 기묘막측한 일을
요즘 신세대들이 좀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다음 여름호, <우리가정 작은 천국> 책에 실을 수 있게 좀 손질 좀 해주세요. 꼬~옥!” 이라고,
 
다시 관심을 갖고 찾아보니... 첨부 사진을 포함하여,
그 사모 선교사(사이리시)가 유관순을 발굴한 분이라는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다듬어, 아래처럼 김장로님과 박간사님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한 번, 참고! 하심 바란다. 
추신: 양촌 치유센터 원장 김종주장로(75세, 동아대CCC 졸,  국민일보 치유세미나 대상 수상!)는
지난 20여 년간 세계 선교지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영육간의 치유 돕는 일을 포함하여,
한국교회 7만여 명에 이르는 치유세미나와 치유사역을 섬기고 있다. 부산CCC 이건오박사와 친구! 

제목: 한 선교사 가족이 한국 건국사에 끼친 영향
 
(편집자 주: 아래는 1905년 공주에서 사역을 시작한, 한 미국 선교사(샤프 윌리엄스)와
아버지의 믿음 따라 한국까지 왔다가
그 온 가족이 한국 건국의 기초를 놓는 일에까지 끼친 기막힌 헌신에 관한 ‘선교비사’ 이다.
샤프 선교사가 생을 떠날 때 2살이었던 장남 우광복[미국명은 죠지 윌리엄스, 해군 군의관, 중령]은
미 군정청의 참모로, 6.25의 동란에는 군의관으로 헌신하다가
1994년, “공주 영면동산 내 동생 곁에 나를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영면동산에 잠자고 있다.)
 
지금부터 110년 전 한 젊은 선교사 부부가 미국 선교부에서 한국으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이 젊은 선교사 부부는 충남 공주를 선교 기반으로 하여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공주에서 첫 아들을 낳았는데 첫 아들의 이름을 한국의 광복을 기원하면서
한국식 이름을 우광복 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올리브와 로저라는 두 딸을 낳았습니다.
1906년 2월, 논산지방 부흥회를 인도하고 돌아오다가 비를 피해 상여 간에서 잠시 쉬었는데
바로 전날 장티푸스로 죽은 사람을 장례하고 그 장례용품을 보관해 두었는데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선교사는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1906년 3월,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졸지에 선교사님 부인(사에리시 선교사)은 과부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놀라운 사실은 2년 후 선교사님의 부인이 자녀를 데리고 다시 한국 공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공주에 큰 교회들을 세우는데 기여를 하고 47년간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그의 사역가운데 괄목할 것은 유관순을 양녀로 삼아 명선여학당에서 2년간 공부시키고
이화학당 3년에 편입을 도움으로 한국 여성독립운동가를 탄생시키는 일에 기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의 불행은 계속됩니다.
두 딸이 풍토병에 걸려 죽었는데 우광복의 여동생 올리브는 11살에 죽어서 공주 영명동산에 묻힙니다.
 
우광복은 공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나오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때가 바로 일제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되어 미군정청 존 리드 하지 장군이 군정관으로
한국을 신탁통치 하던 때였습니다.
그때 영어와 한국말을 능통하게 구사할 사람이 필요 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선교사 아들 우광복입니다.
우광복이 하지 중장의 참모가 되어 한국 정부수립에 관여 합니다.
그때 하지가 우광복에게
“자네가 한국 실정을 잘 아니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 갈 인재 50명을 추천해 달라.”고 합니다.
우광복은 어머니와 상의한 후 어머니가 추천해 주는 50명을 하지 장군에게 소개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중 48명 거의 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정부 수립될 때 요소요소에 기독교인들이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는 일에 기여합니다.
특별히 문교부 장관에 기독교인이 임명되어 미신 타파를 시작했습니다.
국방부장관이 기독교인이 되어 군대 안에 군목제도의 토대를 마련하여 한국군을 신앙의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헌 국회 국회의원 거의 모두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제헌국회 속기록 첫 장을 열면 기도로 국회를 개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48년 5월 30일, 이승만은 이윤영 목사에게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
기도로 국회를 열 것을 주문합니다.

그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성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伸寃)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이때 기독교인이 전 국민의 5% 안 되는 때 이었습니다.
그런데 윌리엄스 사모님이 추천해준 50명의 기독교인들은 각 분야에 들어가서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상전래의 전통종교와 왕조시대의 붕괴를 거치며
오늘날의 한국교회로 자란 '기적'의 한 일역을 담당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러분, 이 기적이 어떻게 가능 했습니까?
미 군정 시절 우광복이 추천한 50명이 배후에 있었습니다.
우광복에게 누가 50명을 추천했습니까?
바로 우광복의 어머니, 이역만리 타국에서 남편과 두 딸을 잃어 버렸는데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사모님 때문입니다.
 
우광복은 1994년 87세 일기로 소천했는데,
11살에 죽은, "내 동생 올리브가 묻혀있는 공주 영면동산 내 동생 곁에 나를 묻어 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아마도 한평생 동안 한국에서 풍토병으로 죽은 동생이 가슴에 살아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지금 우광복의 묘가 동생 옆에 나란히 있습니다.
 
샤프선교사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모든 것은 ‘슬픈 이야기’로 끝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새 '뜻'은 신생 독립 한국의 기초를 놓는 일에
그의 남은 가족들을 사용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 29:11)
 
이러한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내 나라와 내 민족이
이 혼돈을 깨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세계선교하는 민족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17-04-05 18: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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