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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균형 잡힌 기독교(Balenced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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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힌 기독교(Balenced Christianity)' 



존 스타트의 위대한 점은 철저하게 성경에 기초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균형 잡힌 기독교>는 양극단으로 흐르기 쉬운 주제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생각과 행동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했다. 책의 내용은 존 스토트가 일생을 통해 저술한 50여 권 책의 핵심이다.

균형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목적이며 목표이다. 존 스토트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몇 가지 내용에 대한 의견과 입장 차이로 인해 '분열'되었다고 지적한다. 어떤 문제는 신앙의 본질로 양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비본질적인 것으로 다양성과 자유를 인정해야 하고 사랑으로 협력해야 할 부분이다. 보수적인 견해만을 고집하는 '보수주의'가 아니라 분별력을 가지고 진리를 보존하려는 '보존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보수, 진보 양자택일이 아닌 보수와 진보 양쪽이다. 모든 기준은 성경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 위배될 때 둘 다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양극화 현상이 일어날 때 4가지 균형을 제시한다. △지성과 감성 △보수와 진보 △형식과 자유 △복음 전도 사회참여이다. 4 가지는 현대사회와 교회에서 신학적•신앙적 해석과 각자의 삶의 자리에 따라 민감한 주제들이다. 



첫째, 지성과 감성의 균형이다.
그리스도인 중에 차가울 정도로 지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한편으로 너무 감성적이어서 지적인 기능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그리스도인들도 있다(P.23).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경험'을 진리의 표준으로 삼고 지성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다(P.25).

성경은 이성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형상의 일부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성적인 존재로 만드시고 이성적인 계시를 주신 이성적인 분이시다. 이성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P.26). 신앙과 이성은 양립하는 것이 아니고 이성을 활용할 때 신앙은 성장한다(P.27). 반지성주의는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전락시킨다. '세속주의'란 술, 담배, 춤, 화장, 영화, 미니스커트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에 관한 문제이다. 이 세상 풍조를 분별하지 않으면 세속적 그리스도인이다(P.28). 



하나님은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만드셨을 뿐 아니라 감성적인 존재로 만드셨다. 인간으로서 사랑, 분노, 연민과 슬픔, 경외감을 느낄 줄 아는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P.29).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에서, 임박한 예루살렘성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셨다(P.30). 감정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어떤 느낌 같은 것으로 억제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표출되어야 하는 정당한 표현이다(P.34). 결국 지성과 감성의 올바른 관계는 '진리' 안에서 하나이다. 진리는 차가운 것도 메마른 것도 아니며 따뜻하고 열정적인 것이다(P.35).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을 만난 후 "길에서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고 말씀의 뜻을 깨달을 때 새로운 진리를 알게 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이다(P.36). 로이드 존스는 "설교는 불붙는 논리다"고 했다. 



둘째, 보수와 진보의 균형이다.
'보수주의자'는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유지하려는 사람들로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진보주의자'는 과거 유산에 반기를 들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급진적인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다(P.41).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탁한 것을 지키도록(딤전 6:20, 딤후 1:14)",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 1:3)" 말씀하신 것 처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보수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되어야 한다(P.42). 복음을 보수하는 것 보다 '보존주의자'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P.44).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보수할 것을 보수하고 변화시킬 것을 변화시키는 둘을 분별할 줄 아는 '급진적 보수주의자(Radical Conservatives)'가 되어야 한다(48쪽). 성경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지만 문화는 교회의 전통, 사회적 관습, 예술적 창조물의 혼합체이다. 문화적 변화에 분노하거나 저항할 것이 아니고 변화에 인간의 존엄성을 진실되게 표현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내용으로 변화하도록 개혁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P.50). 교회도 다양한 문화적 형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교리, 예배 의식, 음악, 예배당 장식, 성직자, 성도의 역할, 출판, 홍보, 목회와 전도 방법은 사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에 의해 정기적으로 비평과 평가되어야 한다(P.54). 세속적인 반권위주의를 지나치게 수용한 나머지 하나님의 권위와 말씀의 권위까지 거부해 스스로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P.56). 교회는 변화와 행동을 촉구하는 '잔소리꾼'들과 비성경적인 진리와 타협하지 않도록 꾸짖는 '감독관'들이 필요하다. 이 둘은 교회에서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양쪽 모두 서로의 임무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며 자신들의 역할을 완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P.60). 



셋째, 형식과 자유의 균형이다.
형식과 자유의 문제에 있어 교회의 구조와 예배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시한다. 교회의 부패와 사회적 변화는 제도적 교회의 형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제도에서 탈피해 새롭고 탈구조적인 기독교를 요구하고 있다(P.63). 구조적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예배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교단과 교파에 매이지 않는 교회를 지향한다(P.64).

교회는 비가시적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딤후 2:19, 엡 2:19~22) 가시적 측면(고전 3:16, 12:27)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 입교하는 의식인 세례와 교우들의 교제의 식사인 성만찬을 제도화하신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양 떼를 목양하기 위해 목자를 세우셨다(P.66). 예배 형식이 자발적이고 활기차고 때로 요란할 수 있다. 성령은 바람과 불로 상징되기도 하지만 비둘기로도 상징되기도 한다(P.68). 참되고 영적인 형식적인 집회가 아름다울 수 있고 형식이 없는 집회가 경건할 수 있다. 지역 교회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주장하면 과거와 현재의 그리스도인들과의 연결을 무시할 수도 있다(P.68). 성경은 진리 없는 연합을 지지하지 않지만 연합 없는 진리 추구도 지지하지 않는다. 독립은 정당하나 고백하는 공동의 신앙 안에서의 교제도 정당하다(70쪽). 초대교회는 성전의 형식적 예배와 함께 가정에서의 자유로운 교제를 함께 시행함으로 서로 보완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구조와 비구조, 형식과 비형식, 권위와 자발성, 독립성과 교제가 모두 필요하다(P.71). 



넷째,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의 균형이다.
'복음주의(Evangelical)'의 의미는 '전도에 열정적인(Evangelistic)'이라는 말이다. 복음주의자들은 복음 전도를 복음주의적인 것으로 해석해 소위 '사회 복음(Social Gospel)'에 반발해 온 것이 사실이다(P.74). 사회참여를 하면서도 자선사업 같은 일에만 집중하고 제도적 개선 활동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P.75).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비기독교 사회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책임이 복음 전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뿐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P.78).

'WCC(세계교회협의회)'가 73년 방콕에서 주최한 대회는 '오늘의 구원'이란 주제로 개최되어 구원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용어로 재정의하였다. "우리는 경제적, 정의, 정치적, 문화적 갱신을 위한 투쟁은 하나님 선교의 전적인 해방 요소다(P.76)." 



최근 복음적 그리스도인들안에 환영할 만한 변화가 있다. 사회적 책임을 회피한 채 '작은 윤리(흡연, 음주, 춤 등)'에 집착하고 '거대한 윤리(인종 차별, 폭력, 가난, 환경, 정의 등)'를 소홀히 했던 것을 깨닫고 있다(P.78). 신학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며, 종교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 관심을 두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것이다(P.78). 부활하신 예수님이 교회로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을 주신 것은 사실이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대치하는 것은 아니다(P.80).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리스도인은 둘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다른 사명을 주셨고 다른 은사를 주셨다. 각자가 받은 소명과 은사에 따라 부르심에 따라 충성해야 한다(P.81). 개인과 지역 교회도 마찬가지다. 지역 교회는 교인 각 사람이 은사에 따라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교회도 복음 전파와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참여를 함께해 나가야 한다(P.82).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진리'만큼 뜨겁게 하는 것이 없다. 하나님 안에서 지성과 감성, 보수와 진보를 동시에 강조해 서로를 보완해 주는 형식과 자유,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를 균형 있게 수행해야 한다.

바울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가르치면서 자신은 그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말한 것처럼 사역자는 '연구하고 실천하고 가르치며' 하나님 품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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